● 게임명 : Room No.9 (ルームナンバーナイン)
● 장르 : 밀실감금능욕강제ADV
● 제작사 : parade (모회사 CLOCKUP)
● 발매일 : 2016년 9월 30일
● 가격 : 패키지 4800엔 / 다운로드 4000엔 (세금별도)
● 기획/각본/감독 : 아메미야 미츠루(雨宮充)
● 원화 : 니카이도 시노(二階堂紫乃)
● 시나리오 : 사와 마사키(沢柾機)
● (매우 주관적) 플레이타임 : 25시간...인데 웬만하면 10~15시간. 내가 원래 좀 오래 걸리는 편임
● DL판: http://dlsoft.dmm.co.jp/detail/hobe_0335/ (일어판, 모자이크O)
● 스팀판: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354760/Room_No_9/ (영문판, 모자이크X)
● DL판에 번역기 돌려서 플레이함. 방법은 더보기로 메모.
1. 로케일 에뮬레이터로 실행
2. Textractor x86 실행
3. room_no9.log 부착
4. 후킹주소 적당히 고르고 필요할 경우 Remove Repeated Characters 확장 추가
5. 아네모네H로 번역문 출력
6. 게임 플레이
(투컨 돌아감. 텍랙 먼저 돌려보고 되면 그냥 하는 편이라 본인은 텍랙 씀)
<euphoria>로 유명한 남성향 에로게 제작사 CLOCKUP의 자회사 BL브랜드 parade가 발매한 2번째 작품.
남성향 제작사가 여성향 만드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남성향 테이스트를 그대로 유지하며 만드는 일은 드문데, parade는 수위만 완화했을 뿐 남성향의 기조를 그대로 가져가서 만든 것 같다.
사실 이걸 가지고 '남성향 BL'이라고 부르는 게 굉장히 마음에 안 들긴 함. 난 이런 게임 없어서 못하고 살아왔고 내내 이런 느낌만을 찾아다녔는데 이걸 남성향이라고 해 버리면 제가 뭐가 됩니까?
그리 말하는 맥락은 알겠다만... 그런 논리로는 내가 바라는 모든 여성향 컨텐츠를 '남성향 BL', '남성향 오토메', '남성향 시뮬레이션' 이렇게 불러야 될 판이니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튼 궁극적으로는 이런 방향성의 BL작품이 늘어나서 당연하게 모두가 여성향이라고 인식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 감상
오랜 친구 사이인 다이치와 세이지는 여름방학을 기념하여 오키나와로 여행을 계획하지만, 도착 후 눈을 떠 보니 휴양지의 바닷가는 온데간데없고 난생 처음 보는 방에 갇혀있게 되는데... 탈출을 위해 터무니없는 '과제' 수행을 눈앞에 둔 두 사람의 운명은?
대략적인 흐름은 이렇다.
친구 둘이 여행을 갔다가 모종의 범죄조직에 납치감금당해 최소 10일간의 실험 과제 수행을 강요당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소재를 이용해서 표현하자면 섹X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에 스트레이트 남성 두 명을 넣고 10일간 감금하는 스토리이다.
미들프라이스 게임답게 단순하고 간결한 플롯에 플레이타임도 짧다. 주연 이외의 등장도 없다시피 해서 주된 내용은 오로지 과제를 둘러싼 둘의 상호작용이다.
친구에 환장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게임. 정말 궁극의 친구를 보여준다.
과제로는 일반적인 BL게임치곤 하드하고, 하드코어 게임치곤 소프트한 라인업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던 게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던 감정과 관계가 무너져내린다'는 묘사를 기가 막히게 섬세하게 잘해서 거기서 느껴지는 심적 타격이 상당했다.
우정이 핵심 주제인 만큼 혹자는 '이런 건 BL게임이 아니다'라고 평하던데, 난 이 게임이 BL게임의 본분에 충실하다고 느꼈다. 다만 그 중에서도 납치감금스릴러물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 뿐... Boy's Love Game이라는 장르명은 관습적 표현 같은 것이고 남성과 남성이 주요하게 얽히는 이상 당연히 그 분류에 편입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고정된 틀을 깨는 작품이라는 얘기에 플레이를 결심했을 정도였다.
로맨스가 적은 게 아쉬운 부분인가? 다른 요소도 모자란 상황에 로맨스까지 불충분하다면 그야 졸작이겠지만 룸 넘버 나인은 그렇지 않았다. 끈끈한 우정을 지닌 친구 둘을 가둬놓고 자연스러운 심리변화를 따라간 결과물로서 로맨스가 아닌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지, '있어야 할 로맨스가 없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걸 납득시키고도 남을 서술이 게임 내에 있다.
물론 로맨스 게임을 기대했는데 예상과 달라서 실망하고, 취향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작품의 완성도에 흠이 되진 않는다. 이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BL게임이다.
애초에 둘의 감정에 사랑이 없다고 일축할 수도 없다. 그 사이에는 분명하게 필리아라는 형태의, 아마 연인 간의 사랑도 넘어설 정도의 거대한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강제로 에로스를 섞어넣는 것이 게임의 줄거리이며, 끝까지 그 사랑을 지켜내는 F엔딩을 진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시나리오라이터의 코멘트에도 있었지만 이 게임을 하다 보면 '나는 이렇게 고난을 함께 헤쳐나갈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또는 '내가 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든지.
현재 그런 친구가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없다. 이 게임에서 가장 판타지적이라고 느낀 부분은 모종의 범죄조직도 해괴한 과제도 아니고 둘의 우정 그 자체였으니... 플레이하다 보면 거의 질투가 느껴질 만큼 부러웠다.
내가 저 입장이었다면... 같은 건 솔직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ㅋㅋ 피험자A(다이치) 피험자B(세이지) 중에 고르라면 A를 고르지 않을까... A쪽 과제 더럽게 아파보이긴 하지만 나는 내 존엄성이 더 중요하다. 상대가 차라리 생면부지의 타인이라면 나가서 다시는 안 보면 되지만 절친일 텐데... 그래서 괴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 중에 전자를 택한 세이지 보면서 심정이 공감되기도 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다이치만큼 의리 있거나 세이지만큼 용감한 답변은 안 나오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내가 세이지 입장인데 과제 리스트에 창상이나 못박기가 있다면 나는 죄다 그걸 시켰을 거다.
...생각할수록 이 우정이 왜 판타지인지만 절절히 느껴진다. 삶에서 다이치와 세이지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그거야말로 일생의 축복이니 소중히 하자.
■ 엔딩 감상
엔딩 본 순서는 아래와 같음
D(이별) - A(능욕) - C(잔류) - B(살해) - F(친우) - E(행방불명)
- A(능욕): 둘의 끈끈하고 티없이 맑던 우정과 비교하면 마음이 아파지는 엔딩. 룸 넘버 나인의 영향을 가장 직격으로 맞은 엔딩이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저것도 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어지는 부분이 재미있다. 비록 크게 변해 버렸지만 당사자들이 좋다면 괜찮지 않나 하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생은 계속 이어지는 거지
- B(살해): 이건 죽일 때의 다이치 내면묘사와 세이지 반응이 최고였다. 마지막 일러스트에서 다이치에게 남은 상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기분이었음
- C(잔류): 철저한 둘만의 세계. 계속되는 섹X에 뇌가 살짝 녹는 기분이었는데 바로 그게 C엔딩의 본질 아닐까? 이 엔딩도 당사자들이 즐긴다면 괜찮지 않나 하며 봤음
- D(이별): 공략을 안 보고 했더니 뭐만 하면 이거 나와서 날 노이로제 걸릴 뻔하게 만들었다. 의외로 현실감 넘쳐서 다소간의 씁쓸함은 남지만 제일 있을 법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느 의미로 이 게임의 배드엔딩은 우정을 잃은 D와 E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 E(행방불명): 관계의 파탄을 혼자만의 여행으로 표현하는 대목의 묘사가 좋았다. 먼발치에서 세이지를 발견하지만 고작 찰나뿐인 엇갈림이었고... 다이치가 의외로 교사를 포기하지 않은 점이 신기했다. 이미 정해둔 진로를 바꿀 만한 삶의 의욕조차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 F(친우): 공략 없이 한다고 온갖 경우의 수를 죄다 메모해봤는데, 이 엔딩 보려면 ㄹㅇ한치의 오차 없이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다른 엔딩들은 보는 방법이 2~3개 정도는 되는데 F는 오로지 하나였음. 거기서부터 이미 메타적으로 멋지지 않나? 수많은 세계선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우정을 지켜낸 세계선이라니... F를 마지막으로 플레이하면 각종 씬에서 '손의 상처를 의식해서 제정신을 차리는' 장면이 추가됐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그때마다 감격스러웠다. 모노레일의 손잡는 씬이나 '또 보자'고 주고받는 씬은 분명하게 이 게임의 명장면이다.
뻘하게 F엔딩에서 운동기구 들여놓는 장면이 웃겼다.
룸 넘버 나인은 운동으로 정신병과 우울감 치료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탈출하자는 교훈을 주는 현대인 맞춤형 게임이구나!
그러고 보니 게임 시작 초장부터 실신 > 관장 > 능욕엔딩 연타로 보면서 우정이 끝장나는 걸 목도했더니 관장이 거의 인간관계의 종언처럼 여겨졌다.... F루트에서 이걸 천재적 발상으로 뒤집는걸 보면서 감탄함. 역시 섹X로 생긴 문제는 섹X로 해결하는게 맞다
와중에 그놈의 관장씬은 뭐 그리 매번 나오는지, 내가 루트3을 맨 마지막에 했는데 오죽하면 그 직전까지도 '아니 이걸 겪고 멀쩡한 친구로 돌아가는 게 된다고????? 아니지??? 손가락 절단하고 나가는 거지??????' 한 게 잊히지 않는다. 하긴 세이지가 어떻게 다이치 손가락을 자르겠냐 말도안되긴하는데......... 나라도 손가락 절단은 절대 시키지도 당하지도 못할 것 같긴 한데.........
범죄조직은 납치 전에 호구조사라도 마쳤나? 폭력과는 멀게 살아왔을 세이지에게 채혈에 칼질에 인간못질을 시키질 않나, 학대받고 살아온 다이치에게 타인을 공들여 학대하는 체험을 시키질 않나, 프라이드 높을 세이지를 밑바닥까지 내리꽂는 과제를 주거나... 제각각 가장 효과적으로 무너질 일을 시켜놨으니ㅋㅋㅋ 유일하게 다이치는 자신이 당할 과제에 거부감이 없었지만 그러면 뭐하나, 실행할 세이지의 정신적 고통 신경쓰느라 말도 못 꺼내는데...
심지어 이 짓 다하고 주는게 1억도 아니고 고작 1천만 원? 양아치새끼들이 따로 없음
사실 게임하면서 왜 이렇게 다이치 상해 입히는 선택지가 적나 의문이었다. 내가 그런거 좋아해서....ㅎ 결과적으론 다이치가 적당히 당해야만 F엔딩을 볼 수 있는데, 게임 시작부터 다이치를 괴롭히고 싶었던 내 입장에선 아주 살짝 억울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 육체적 상해보단 정신적 고통을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겼고, 과제 수행이 세이지 위주로 진행된 것도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물론 이해한다. 과제가 교묘하게 에스컬레이트된 것도 한몫했을 거다. 그러나 정신적 트라우마란 때론 육체의 고통을 능가하는 흉터를 남긴다... 그게 최악의 형태로 폭발하는 게 A,B,C엔딩이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정신상태가 선명히 묘사되는 점이 좋았다.
게임하면서 무척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면
다이치가 자기는 어떻게 변하든, 게이가 되든, 혹은 상해를 당해 손가락이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아예 죽어버리든 상관없지만 세이지에게 사람을 베는 취미가 생기게 하고 싶지는 않고 도를 넘는 모욕을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다이치 자신이 다치기 싫은 게 아니다. 세이지가 망가지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하는 행동이 정말 아름답게 와닿았음.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둘의 유대감이 진실하다는 점이 보는 이에게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창작물도 물론 싫지 않지만, 고결한 가치란 울림을 주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쓰면서 느끼지만 이런 생각을 그뭔씹19금섹못방BL야겜 플레이하면서 하게 만든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마음 같아서는 아름다운 우정이 실존하는 훌륭한 시나리오의 명작이라고 만인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그 우정을 감싼 포장지의 진입장벽이 다소 심각한 느낌?
■ 캐릭터에 관한 감상 - 다이치
이 게임의 1인칭 시점을 담당하는 캐릭터. 다소 우울해지기 쉬운 줄거리지만 다이치 특유의 발랄함과 우스갯소리가 섞인 독백이 분위기 환기에 큰 도움이 됐다. 일단 낙관적인 소리 한번 뱉어보고 '그럴 리 없지~ 역시 그렇지~' 같은 독백 해주는 게 플레이하는 내게 제법 위로가 된다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 세이지가 다이치에게 평소처럼 굴어달라고, 그 편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오고.
어린 나이에 원수나 다름없는 부모 밑에서 중졸인 채 사회인이 될 뻔하는 등 암울한 성장배경을 지녔지만 세이지의 응원과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가는 데 성공하고, 지금은 온갖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대학에 진학해 교사를 꿈꾸고 있다. 게임 내내 입버릇처럼 세이지 이케멘~ 세이지 대단해~ 결혼하고 싶어~를 달고 살지만 내게는 다이치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성품과 정신력을 지닌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다이치의 비틀린 유년기와 상반되게 세이지는 명문가 출신 잘 자란 도련님인데, 그런 세이지를 절친으로 두고도 다이치는 한순간도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갖는 법이 없었으니까. 울분을 손쉽게 해소하는 방법으로 남을 미워하고 깎아내리는 일만 한 게 없는데도 타인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자양분으로 삼는 능력은 아무나 가진 게 아니니까. 세이지를 대단하게 여기는 마음이 진심인 만큼, 그의 위상에 뒤지지 않고 기꺼이 나란히 설 정도로 스스로를 믿는 강인한 마음이 다이치에게 있다고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게임을 해서인지 스토리를 진행할수록 활력 있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점점 붕괴해가는 다이치가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나 소중한 세이지'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마음을 다치고,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특히 루트1에서 죄악감조차 느끼지 않게 됐다면서 자신이 부모와 똑같은 쓰레기가 아닐까 자조하는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A엔딩을 생각하면 한구석의 서글픔을 지울 수가 없음...
다이치는 표현이 솔직하고 망설임없어서 시원시원하다. 은근히 눈치도 좋다. 뭐랄까 미리 앞서서 눈치채는 타입이라기보단, 눈앞에 상황이 닥쳤을 때 직감적으로 상대의 상태를 눈치챌 줄 안달까...
솔직한 점과 즉각적인 눈치가 좋다는 점이 합쳐져서
1. 욕실씬에서 걱정되는 마음에 대뜸 들어가보고, 세이지에게 말 건 후에야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눈치채는 장면
2. F엔딩 모노레일에서 세이지의 존재를 찾고 싶어서 손을 잡고, 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나서 세이지도 자신을 찾고 있었음을 눈치채는 장면
같은 게 나옴.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세이지의 속내를 다이치가 눈치채고 알아준다는 점이 너무 좋았음.
■ 캐릭터에 관한 감상 - 세이지
냉정침착 두뇌명석 용모단정 품행방정 미남안경친구. 다이치의 1인칭 시점에 동화되느라 게임 올클했더니 나도 '세이지는 대단하지...' 이러고 있게 됨ㅋㅋㅋ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멋진 친구다.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최적의 판단을 내려 다이치를 안심시키고, 살면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을 의료도구나 흉기를 다루는데도 용기 있고 신속정확하게 끝마치기도 하고... 중요한 건 그 상해 행위를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떨면서도 이 악물고 해낸다는 점이다. 손재주 좋은 팔방미인이라 뚝딱 해내는 게 아니라, 무섭고 긴장되지만 친구를 지키려면 반드시 실수 없이 성공시켜야 하기에 온 힘을 다해 완수해내는 의지가 멋졌다. 물론 거듭되는 행위에 서서히 무뎌지는지 못 박을 즈음에는 반응이 옅어지기는 한다. 과제가 주는 '변화'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처럼. 그럼에도 세이지는 '놈들이 너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말하는 변함없이 다정한 사람이고, 그래서 좋았다.
세이지가 과거의 다이치를 이끌어줬을 때도 타의 없는 따스한 염려를 보여주었기에 다이치도 올곧게 받아들일 수 있던 게 아닐까... 둘 다 정말 속 깊고 좋은 애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매 루트마다 꼬박꼬박 나온 관장씬이다.... 하는 사유는 매번 조금씩 달라지고 씬에서의 반응과 이후의 전개도 모두 약간씩 다르다. 루트3이 아니고선 내적 갈등이 명확히 묘사되진 않지만, 최소한 손가락 절단 전까지는 상해 과제 쪽 손을 들어줄 정도로 싫었을 거다. 심지어 세이지는 창상vs여자속옷vs목조르기 중에 3번을 고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이지는 다이치가 이틀 연속으로 과제를 수행할 상황에 처하거나, 손가락 절단이 나오거나, 다이치가 참아 달라고 말하면 그걸 받아들인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거지????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난 상대가 이틀 연속 상해를 입건말건 다른 선택지가 창상이나 못박기 정도라면 그걸 고를 것 같은데.........................
그러나 세이지는 다이치가 소중해서, 혹시라도 다이치가 잘못될 가능성을 견딜 수 없어서 그걸 받아들인다. 세이지가 느꼈을 불안감과 공포심도 이해는 가지만 그 걱정 때문에 행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경탄스러웠다.
스킵하면서 한 열 번 본거같은데 그때마다 계속... 매번...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아니 어떻게 모든 엔딩에서 필연적으로 이 씬이 나올 수가 있냐고? 솔직히 게임이 세이지에게 너무했다... 진짜 너무함
아무튼 세이지는 성장배경도 좋고 어른스러운 티가 나는 침착한 성정이라 그런지 힘든 내색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자기 속내를 잘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러니 루트2에서 완전히 무너져버릴 때까지도 다이치가 눈치를 못 채기도 하고...
그래서 겜 다 하고 나니 세이지 시점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임 얘기지만 s로 시작하는 모 게임에 시점 하나 바꿨다고 딴판이 되는 캐릭터가 있는데, 세이지는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의 주된 약점이었는지, 무엇이 그를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면 묘사가 보고 싶다. (아마 루트2의 전후사정을 따져볼 때 스스로가 불가역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자기혐오감과 거기서 비롯된 절망감 부류일 거라고 생각하곤 있지만... 그 상세한 사고의 과정을 보고 싶음)
혹시 오피셜북에 언급이 있으려나? 곧 주문 예정인데 어서 도착하길
■ 시스템
남성향겜 뽑던 제작사임을 감안하더라도 BL게임 중에서는 탑급으로 만듦새가 좋고 시스템이 편리했다.
대강 앉은 자리에서 나열해 봐도
장면 점프, 캐릭터별 보이스 조절, H신 상황별 보이스 조절, 보이스 즐겨찾기, 보이스 무한 반복재생, 다음 스크립트의 음성 유무 고지, 스킵/오토 세부조절, CG의 부분 확대, 그로테스크/스캇/체모 온오프, 인게임 안경 온오프, 긴급회피, 풍부한 세이브슬롯 및 편집 자유도, 이전 선택지로 돌아가기, 확인 창 출력 여부 조정, 이지모드, 버추얼 오토 모드, 다양한 시스템보이스 탑재, 감상 모드에서 백그라운드 소리 감상 가능
...등등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와 진짜편하다 소리가 클릭마다 절로 나올 만큼 좋았다.
그중 긴급회피 <이게 진짜 골때리게 웃김
게임 도중 타이밍을 막론하고 esc 누르면 무조건 이 화면 나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피화면 3종중에 하나 선택 가능하고, 심지어 유저 보고 원하는 대로 커스텀하라고 폴더가 따로 있다.
이렇게까지 플레이어의 사회적 체면을 신경써주다니 정말 감사한 게임이죠
게임 실행/종료와 세이브/로드 시에도 매번 보이스가 출력되는데 이게 또 백미다.
통상 기동 보이스
감금 전 / 감금 초기 / 감금 중기 / 감금 후기
잘 시간 / 일어날 시간 / 오전+오후 / 점심+저녁 / 하기 전 / 자기 전
시스템보이스
세이브 / 세이브(H) / 로드 / 종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왤케많음? 특히 H신에서 세이브할때가 개 재밌음
그리고 이거 생일날이나 새해?에도 반응하는 보이스 있던데 꼼수써서(ㅎㅎ;) 들었음 왤케귀엽냐....
■ CG
이게 CG야 차력쇼야?
체모/안경 탈착 여부에 따른 CG가 따로 존재하니 씬 매수는 x4 됐겠지만, 그거 감안해도 숫자가 장난 아니다
이게 풀프게임이면 몰라 미들인데ㄷㄷ;
원화 담당하신 분은 니카이도 시노.
...인데 사실 룸넘나보다 조금 앞서서 본가에서 출시된 선배격 작품 <여름의 사슬> 원화 담당이신 노리자네(のりざね) 씨와 동일인물이다.
다이치와 세이지 둘 다 일반적인 대학생이라서인지 첫인상만 봤을 땐 좀 심심하네~ 정도가 다였는데
보다보니 세이지 생긴게 너무너무 취향이다 ................. 특히 그냥 무표정일 때와 다이치 보고 웃을 때의 갭이 끝내줌
일러스트도 통상적인 여성향 일러 방향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데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19금겜 이름값을 하듯이 인체 근육 표현도 좋았고..
특히 H신에서의 구도/표정/액체/효과가 남성향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해서 아주!!!!!!! 좋았음!!!!!!!!!!!!
이게진정한여성향이지제발이대로만갑시다
여성향도슬슬감정선위주라는오랜편견을벗어던지고당당하게누키게를발매할때가됐다고요
뻘소린데 최초의 H신에서 너무........작아서 순간 겜을 하차할 뻔했으나 30초 정도 더 눌러보자 커지길래 깊이 안도했음
안 섰으면 뭐 그럴수도있죠 하하
...그래도 웬만하면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좀 크게 그려주시면 어떨까요?
■ H신
말 나온 김에 H신 얘기도 해야겠다
사실 이 게임 올클리어에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음
이유: 19금게임 땡길때만 켜서
백그라운드 H사운드를 여성향에 들고와준 퍼레이드... 그저 신...
스토리가 진짜 끝내주게 좋거든? 몰입감도 좋고? 하지만 그것과 비견될 만큼 19금적으로도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스토리 vs 19금 하면 고르는게 미치게 고민될 정도
처음 본 엔딩이 루트1 쪽이었는데, 하는 내내 기립박수가 절로 나와서 그거 감상하느라 스토리의 심각성이 뇌에서 빠져나갔을 정도였음
사실상 대가리를 2등분해서 한쪽으로는 '아 세이지랑 다이치 어쩌다 이렇게됐냐 안타깝다ㅠㅠ'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캬~~~~~ 이지랄을...........
그래도 루트3쯤 가서는 스토리에 몰입해서 안 그랬는데 그 전까지는 씬만 나왔다 하면 다른 묘사를 한귀로듣고 한귀로흘려서 나중에 다시 읽었음...
아무튼 봤으니 됐죠?
개인적으로는 손가락 / 속옷 / 실신 / 관장 / A엔딩이 가장 좋았다.
아니 사실 다 좋았음. 시나리오라이터가 수치+능욕계열 묘사를 너무 잘 해서 과제가 죄다 업계포상이었음
세이지처럼 평소 감정기복 적고 침착차분하며 품위있는 모범생엘리트 계열 캐릭터에 대고 이러는게 ㄹㅇ GOAT임
감사합니다 parade...
■ 보이스
대충 88개 저장했다는 뜻
세이지 역 맡은 분이 BL을 이걸로 처음 해보셨다는데 굉장히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2024년 기준 내가 온갖 드라마CD와 게임에서 몇년째 이름을 발견하는 중이기 때문...
스타트를 끊은 게 이 게임일 줄은 몰랐고, 그런데도 이렇게 연기를 잘해 주신 점에 더욱 놀랐다.
다이치도 훈훈하고 흐뭇하게 내내 좋았음 주로 세이지한테 발랄하게 말할 때의 톤이 정말 취향이다.
사실 등장인물이 2명뿐이라 같은목소리만 내~~내 듣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전혀 질리지 않고 매 장면을 기대하면서 들었던 것 같다.
보이스 둘 다 너무 좋았음
■ BGM
미들 프라이스라 그런지 사실 아주 풍부하진 않다.
그래도 타이틀화면 bgm도 그렇고, 분위기형성이 탁월하다고 감탄한 적이 몇 번 있었기에 굳이 적어둔다.
특히 루트3에만 쓰인 못박기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흐르는 브금이 있는데 이걸 들으면서 드디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 우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해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남
■ 마치며
저렴한 가격, 짧은 플레이타임, 익숙한 소재.
부담없이 플레이할 수 있으면서도 나 같은 사람에겐 인생작이 되는 엄청난 게임이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호' 쪽이라면 이만한 임팩트를 주는 다른 게임은 찾기 어려울 거다.
한 번쯤 플레이해보고 슈뢰딩거의 인생작을 관측해보는 건 어떨까?
게임 다 하고 점포특전 일러를 다시 보면 만감이 교차하며 울컥하는 증세가 나타난다
4년째 신작이 없는 퍼레이드의 신작을 기원하며 리뷰를 마친다... 제발 신작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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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월신명 감상 기록 (0) | 2024.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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